[천자 칼럼] 물보다 훨씬 싼 석유

입력 2020-04-16 18:09   수정 2020-04-17 00:21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말이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를 거치면서 ‘산업의 쌀’처럼 활용되던 석유는 경제발전 내지 현대화의 상징이었다. 아시아의 작은 빈국이 ‘검은 황금’이라는 석유 같은 자원도 없이 초고속 성장을 이뤄냈으니 세계가 주목했던 것이다.

그랬던 석유가 ‘굴욕의 시대’를 맞고 있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간 증산 경쟁에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수요 감소까지 겹치면서 가격이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만 해도 배럴당 60달러(WTI·서부텍사스원유 기준)를 넘던 국제유가는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배럴당 19.87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18년 만의 최저 수준이다. 사상 최고치였던 2008년 7월 11일의 147.27달러와 비교하면 7분의 1도 안 된다.

1배럴이 158.9L임을 감안하면 석유 가격은 L당 152원꼴(달러당 1217원 적용)이다. 1L에 4000~5000원 정도인 캔맥주, 2200~3000원가량인 우유는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몰에서 L당 200~500원에 팔리는 생수보다도 싸다. ‘검은 황금’은 고사하고 공짜로 준다고 해도 운송비 보관비 등을 감안하면 가져갈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의 신세가 된 것이다.

유가가 이처럼 ‘껌값’이 된 데는 단기적인 수급 영향도 있지만 3~4년 전부터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글로벌 공급량이 대폭 늘어난 데 원인이 있다. 과거처럼 100달러를 넘나드는 유가를 다시는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더라도 생수보다 싼 지금의 가격은 정상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산유국 간 ‘감산’ 가능성을 언급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윗 하나로 지난 2일 하루 사이에 유가가 사상 최대폭인 25% 폭등한 것이나, 개인투자자들까지 국내 증시에서 유가 관련 각종 상품에 앞다퉈 투자하는 것 모두 ‘너무 싸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주요 산유국 간 하루 970만 배럴의 감산 합의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맥을 못 추는 것을 보면 코로나 쇼크가 단단히 발목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값보다 싸진 유가가 비교적 단기간에 반등해 투자자들에게 ‘대박’을 안겨줄지, 바닥 밑의 지하로 더 추락할지 두고 볼 일이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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